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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성모 마리아 승리 성당(프라하의 아기 예수 성당)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태오 18,3)

프라하의 은총의 아기 예수상은 동유럽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 시의 '승리의 마리아 가르멜 수도원' 성당에 모셔져 있다.

이 아기 예수님 신심은 가르멜 수도회에 전해 내려오는 영적 유산으로, 아빌라의 성녀 대 데레사와 성 요한의 아기 예수님께 대한 지극한 신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아기 예수상에 관한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역사적으로 증명된 확실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이 경이로운 상의 기원은 스페인이다.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Cordoba)와 세비야(Seville) 사이에 있는 과달키비르(Guadalqivir)지역에는 옛적에 스페인 땅에서 유명했던 수도원이 있었는데 회교인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어 그 후에는 싸늘한 페허 위에 몇 명의 수도자들만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요셉 수사가 열심히 바닥을 쓸고 있을 때 한 꼬마를 만났다.

"요셉 수사님, 바닥이 눈부시게 번쩍일 정도로 정말 빗질을 잘하시네요. 그런데 지금 성모송을 기도하실 수 있어요?"

그러자 그는 약간 당황하였지만 사랑스런 눈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면서 대답하였다.

"그럼."

"오, 그럼 그걸 바로 기도해 주세요. 제발 당장요."

두 손을 모으고 그는 그 자리에서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 하며 이어나갔는데 "...태중의 아들 예수 또한 복되시도다."에 이르렀을 때 그 아이가 갑자기 "그게 바로 나에요"라고 외쳤다.

그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자신 앞에 서 있는 아이는 바로 아기 예수님이셨던 것이다. 그러자 곧 그아이는 사라져버렸고 그는 무척 섭섭해 했다. 이후 요셉 수사는 아기 예수님께 대한 그리움으로 지쳐 죽을 것 같은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아름다운 목소리가 그 끝없을 것 같던 침묵을 깨뜨렸다. "내 모습대로 밀랍 인형을 만들어 주세요"라며 그 목소리는 요셉 수사에게 정중하게 주문했다.

아이가 사라진 뒤 그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여러 가지 모습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누추한 방 안에 한 무리의 천사들에 둘러싸여 그 하늘 아기가 또 다시 나타났다. 그는 문지방에 서서 말했다. "납니다. 내가 왔어요. 이제 당신은 내가 지닌 천상의 얼굴 표정을 그대로 밀랍에 새길 수 있어요."

그는 그 아기의 모습대로 밀랍에 형을 떴고 황홀한 기쁨으로 가득찼다.

밀랍 인형은 혼동할 만큼 그 고귀한 손님과 닮았으니 작품은 성공했던 것이다. 감동에 젖은 그는 무릎을 꿇었고, 두 손에 머리를 파묻고는 이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다. 천사들은 그를 천국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그 수사가 죽은 다음날 밤, 그가 수도원장 앞에 나타나 말했다.

​"부족한 제가 만든 이 아기 예수상은 여러분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일 년 후에 도나 이사벨라 후작부인이 와서 이 천상 아기를 모셔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를 곧 따님인 마리아 만리케스데라라(Maria Manriquez de Lara)에게 결혼 선물로 주게 될 것이므로 여러분은 이후에도 언제나 사랑과 존경을 지니고서 이 아기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체코의 귀족인 브라티슬라브 페른스틴(Vratislav of Pernstyn)과 결혼한 스페인의 마리아 만리케스데라라가 1556년에 이 귀중한 가보를 가지고 체코의 보헤미아로 왔다.

체코 폴리센나 로브코비쯔 공주는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이 상을 물려받았고 궁에서 계속 공경해 오다가 1628년 프라하의 가르멜 수도원에 아기 예수님 성상을 기증하였고, 이 후 가르멜 수도자들은 이 성상을 성당에 모셔놓고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라는 복음 말씀을 묵상하며 아기 예수님 경배를 시작하였다.

- 아기의 모습

예복으로 단장한 프라하의 아기의 모습은 18인치의 키에 넓은 받침돌 위에 서 있으며 은으로 된 받침 중심부에 단단히 끼워져 있다. 왼손은 아기 그리스도의 전 세계적인 왕다운 권위를 상징하는 십자가가 얹어있는 축소된 지구본을 감싸고 있다. 오른손의 두 손가락은 그리스도의 두 가지 본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세워져 있고, 엄지 손가락과 접은 나머지 두 손가락은 복되신 삼위 일체의 신비 안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임을 나타내고 있다.

얼굴은 인간을 만드신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깊은 감사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상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의 위엄 있는 자세와 왕다운 복장에도 불구하고 프라하의 어린 왕은 숨겨진 위대함보다는 인간다운 외소함의 표현으로 더욱 경이롭다고 할 수 있다.

 

-아기의 의상

프라하의 아기 옷은 전례용 예복과 비슷하다. 안에 입은 의복은 사제의 장백의와 유사하다. 하나는 단순하게 만들어진 흰색 아마포로 되어 있고 또 다른 것은 레이스로 되어 있다. 

이를 덮고 있는 것은 실크, 벨벳 또는 다마스크로 만들어진 달마티카(부제용 의복)이며, 그 위에 축소된 전례 카파인 망토를 걸치고 있다. 폴리세나 로브코비츠(Polyxena Lobkowitz) 공주의 선물로 보헤미아에 도착했을 때, 상에 원래 입혀져 있던 의복이 아직도 보존되고 있다.

의상은 전례시기에 따라 바뀐다 이는 프라하에서 콜레라가 한참 유행하여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던 1713년부터 유래된 풍습이다. 가르멜 회원들은 목숨을 유지하게 된 많은 신자들로부터 감사의 표현을 받았다. 그들은 신자들 중 하나인 안나 글라라 로레진(Anna Clare Loregin)에게 그 상을 위해 새옷을 만들고 정기적으로 그것을 바꿀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39벌 중에서 가장 예술적이고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것은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여제가 선사한 것이다. 이것은 페르디난트(Ferdinand)황제가 기증한 금으로 수놓아진 붉은색 옷이라는 점만으로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 교회의 인가 

이 신심에 대한 최초의 교회 인가는 프라하 대주교인 에른스트 하라크(Ernst Harrach) 추기경에 의해 이루어졌다. 1648년 5월 3일 그는 그 경당을 축성했고, 재속 사제든 수도회 사제든 모든 사제들에게 그제대에서 미사 드리는 것을 허락 하였다.

모든 신자들에게 영적인 이득이 되는 하느님의 섭리임을 인가하는 특별한 법령을 발표했다. 1655년 4월4일 프라하의 아기는 장엄하게 대관식을 갖고 왕으로서 선포되었다. 그래서 프라하의 아기에 대한 신심은 베들레헴의 아기와 구별하기 위하여 아기 왕(Infant King)에 대한 신심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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